통영 한 달 살기,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던 선택
통영 한 달 살이, 계획보다 우연이 만든 일상
사실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다.
SNS에 올라오는 누군가의 ‘한 달 살기’ 후기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시간을 가져야지 하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마음속 다짐과 실제 실행 사이에는 언제나 큰 간극이 있다.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숙소비였다.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당연히 넉넉한 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게스트하우스든, 에어비앤비든, 한 달을 머문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몇십만 원은 각오해야 했다.
단기임대도 고려해봤지만, 보증금이 필요하거나 관리비까지 고려하면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도 나는 ‘여행’이 아니라 ‘생활’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이틀 삼일 스쳐 가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조금 더 천천히 걷고, 더 깊게 보고, 하루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예전에 통영 여행할 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였다.
그곳은 그때도 분위기가 좋았고, 사장님도 편하게 대해주셨던 기억이 있었다.
며칠 머무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로 SNS나 문자로 간간이 안부를 나누던 사이였다.
이왕이면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사장님, 혹시 기억하세요? 예전에 며칠 묵었던 ○○인데요.
제가 이번에 통영에서 한 달 정도 지내보려고 하는데, 혹시 방이 있을까요?”
사장님은 뜻밖에도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마침 그 시기에 방도 여유가 있었고, 내가 장기투숙을 생각하고 있다니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
단, 숙소비 전액 면제는 어려운 상황이라,
대신 간단한 청소나 체크인 안내 같은 걸 도와주는 조건으로 숙박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정해진 출퇴근도 없었고, 업무 지시도 없었다. 누군가 체크인을 할 때 방 위치나 공용공간 안내를 도와주거나,
세탁물 정리정돈을 돕는 수준이었다. 게스트하우스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 덕에 자연스럽게 돕고, 자연스럽게 쉬는 구조였다.
손님이라기보다, 그곳에 잠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지낸 셈이다.
나도 계획이 딱 정해져 있던 건 아니었다.
예산은 한정돼 있었고, 일정도 자유롭게 열어뒀다. 숙소 예약도 없이 그냥 버스티켓 하나 끊고 통영에 내려간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선택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어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내 경험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광고도 아니고, 협찬도 전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본 누군가가 같은 곳을 찾아가 “저도 청소할 테니 숙박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있다. 사람 따라, 타이밍 따라 가능한 일이 있었던 것뿐이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기회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렇다고 이게 아주 특별한 인맥이나 운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 자체가 ‘사람 중심’의 구조다.
사장님과 손님, 혹은 머무는 사람들끼리 신뢰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생활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다만, 그 공간에 머무는 태도가 중요하다. 숙박객으로서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리듬을 맞춰야 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런 기회를 얻었고, 거기에 맞는 태도로 지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정식 아르바이트처럼 계약을 맺고 일정한 급여를 받는 구조도 아니었다.
서로의 입장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선을 맞춰가며, 가볍게 지낸 시간이었다.
덕분에 숙소비 부담 없이 한 달을 지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 통영이라는 도시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통영이라는 도시, 그리고 한 달의 의미
통영은 소위 말하는 ‘핫플’ 중심의 여행지라기보다는, 조용히 걸으며 음미하는 도시다.
바다가 가깝고, 골목은 느리다. 한두 군데 유명한 장소만 찍고 갈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아침마다 토스트를 해 먹거나, 근처 가게에 가서 사 먹었고, 바닷가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시장에서 회를 사다가 숙소 식탁에서 혼자 조촐하게 저녁을 먹기도 했다.
매일매일 뭔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달 살이’에서 중요한 건 새로운 장소가 아니다.
낯선 일상에 익숙해지는 그 과정 자체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완벽한 계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여백과, 우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